약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보통 신약을 연구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산업에서는 “누가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나”가 점점 더 큰 질문이 되고 있다. 비만치료제, 항체약물접합체, 세포·유전자치료제처럼 약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제조의 난도도 올라갔다. 이 흐름을 이해하려면 CMO와 CDMO의 차이부터 잡아야 한다.
CMO와 CDMO의 쉬운 구분
위탁생산(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은 제약사가 맡긴 의약품을 대신 생산하는 사업이다. 쉽게 말해 “설계도는 고객이 주고, 공장은 대신 돌리는” 역할에 가깝다.
위탁개발생산(CDMO: 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간다. 공정 개발, 생산 조건 최적화, 품질관리, 상업 생산까지 함께 맡는다. CMO가 생산 대행에 가깝다면, CDMO는 개발 단계부터 생산까지 이어주는 파트너에 더 가깝다.
그래서 CDMO의 가치는 공장 크기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특정 약을 실험실 수준에서 공장 생산으로 키우는 능력, 규제 기준을 맞추는 경험, 고객사의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는 운영력이 함께 필요하다.
대량생산 공식의 흔들림
과거 CDMO 경쟁은 항체의약품을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느냐에 가까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송도 대형 생산시설과 1~4공장 풀가동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올해 2분기 매출은 1조3209억원, 영업이익은 586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30%, 23% 늘었다.
하지만 시장의 질문은 바뀌고 있다. 항체 하나를 대량으로 만드는 시대에서, 여러 종류의 약을 고객 수요에 맞춰 만드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 분업에 비유하기도 한다.
신약 개발사는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CDMO는 복잡한 생산을 맡는 구조다.
물론 바이오가 반도체와 똑같다는 뜻은 아니다. 의약품은 품질, 임상, 규제 변수가 훨씬 촘촘하다. 다만 개발과 생산이 더 전문적으로 나뉘고 있다는 방향성은 힘을 받고 있다.
GLP-1이 키운 펩타이드 수요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가 펩타이드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2개 이상 연결된 물질이다.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체내 호르몬 작용을 흉내 낸 대표 사례가 GLP-1 계열 비만·당뇨 치료제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Glucagon-like peptide-1) 치료제 수요가 커지면서 원료의약품(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 생산 능력도 중요해졌다.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GLP-1 수용체 작용제 시장이 2026년 734억달러에서 2034년 2542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망치이므로 실제 시장은 가격, 공급, 규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빠르다. SK팜테코의 한국 자회사 SK바이오텍은 세종에 펩타이드 원료의약품 공장인 M5 공장을 준공했다. 이 시설은 8개 생산 트레인을 갖추고 저분자·펩타이드 의약품을 연간 수십 톤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스위스 폴리펩타이드그룹 지분 100%를 약 2조7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새 공장을 처음부터 짓는 방식이 아니라, 인수·합병으로 펩타이드 생산 기반을 빠르게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모달리티가 넓어지는 이유
모달리티는 약이 작동하고 만들어지는 방식의 묶음이라고 보면 된다. 항체의약품, 펩타이드, 항체약물접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 세포·유전자치료제(CGT: Cell and Gene Therapy)는 제조법과 관리 포인트가 다르다.
항체는 세포 배양 공정이 중요하다. 펩타이드는 합성과 고순도 정제가 핵심이다. ADC는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공정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글로벌 CDMO 기업들은 생산 품목을 넓히고 있다. 론자는 2028년까지 ADC 생산 규모 확대를 위한 증설에 나섰고, 후지필름 바이오테크놀로지스도 ADC 공장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독일 코든파마는 2027년까지 차세대 펩타이드 생산 시설에 9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 흐름은 “많이 만드는 회사”에서 “여러 방식의 약을 안정적으로 상업화하는 회사”로 경쟁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멀티모달 제조 역량은 CDMO의 새 시험대가 되고 있다.
국내 기업에 생긴 기회와 부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항체 CDMO에서 강점을 쌓았고, 펩타이드와 ADC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누적 수주 총액은 217억달러로 제시됐고, 네덜란드 세일즈 오피스 개소를 통해 글로벌 영업 거점도 확대할 계획이다.
SK팜테코는 세종 M5 공장을 통해 GLP-1 계열 원료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2024년 일라이 릴리와 최대 2조원 규모의 원료의약품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점도 생산 실적 확보에 중요한 기반이다.
다만 기회가 곧바로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펩타이드와 ADC는 기존 항체 생산과 다른 기술, 장비, 품질관리 체계를 요구한다. 공장을 확보해도 실제 상업 생산 경험과 고객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볼 세 가지 기준
첫째, 새 설비가 실제 수주와 상업 생산으로 이어지는지 봐야 한다. 공장 준공이나 인수 발표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사가 맡긴 제품을 일정과 품질 기준에 맞춰 반복 생산하는 능력이다.
둘째, 여러 모달리티가 따로 노는지, 하나의 고객 네트워크로 연결되는지 살펴야 한다. 항체 고객이 펩타이드나 ADC 생산까지 맡긴다면 CDMO의 확장 전략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셋째, 규제 대응과 품질 기록이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약바이오 제조에서 신뢰는 속도보다 오래가는 경쟁력이다. 쉽게 정리하면 CMO는 “대신 만들어주는 공장”이고, CDMO는 “만드는 방법까지 함께 완성하는 파트너”다.